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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계 건축 이야기

한국 선사시대 건축물의 보존과 연구

by 자카르타 김포댁 2024.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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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한국 건축이란?

 

 

신석기 시대( 기원전 6천년경~기원전 1천년경 )는 원형 또는 사각형의 평면에 땅을 파고 기둥과 도리, 서까래 등으로 연결하여 경사진 지붕을 만든 수혈주거( 竪穴住居 )입니다. 움의 한쪽에는 토기의 밑을 잘라 거꾸로 박은 토기공이 발견되는데, 이것은 저장공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선사시대의 주거들은 원시적인 가구기법으로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생활 활동의 편의로 구성되어졌습니다. 특히 지탑리주거지에서는 탄화된 피·조 등 곡물이 발견되었으며, 남녀의 도구가 다른 위치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남녀 또는 기능에 따른 공간분화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청동기 시대( 기원전 1천년경~기원전 300년경 ,민무늬토기 시대)는 농경생활을 영위하면서 정착생활을 시작한 시기로 나지막한 구릉지대의 경사면에 적게는 10호~20여호, 많게는 100호 정도되는 큰 취락을 형성했습니다. 주거지는 대부분 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수혈주거였으며, 기거, 취사, 작업, 저장 등으로 규모를 나누는 벽체가 생기고, 서까래가 지면에 닿지 않는 구조로까지 발전되었습니다. 황해도 봉산군 신흥동 제2호 주거지에서는 칸막이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파주시 월룡면 덕은리(사적 제148호)는 길이 15.7m, 남북 너비 3.7m의 대형 주거지이므로 공동가옥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움집, 귀틀집, 고상주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1.움집: 지하를 깊게 파고 기둥을 세워 도리와 보를 낸 후 여기에 서까래를 지면으로부터 걸쳐 지붕을 짜고 잔 나뭇가지와 풀, 흙 등으로 덮은 수혈 주거가 만들어졌으며, 나중에는 규모가 점차 커지고 공간분화가 이루어지면서 기둥과 벽체를 세우고 실내 구조가 복잡해지며 지붕이 땅에서 떨어 지는 반움집의 형태가 생겨났습니다. 이때 여자는 안쪽 깊은 곳을 차지하고 중간은 작업공간, 입구 쪽은 야외 생활도구 및 남성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사용했습니다.

2.귀틀집: 무주 구천동, 강원도, 울릉도 나리분지, 함경도의 산간 지방과 지리산이나 강원도의 화전민들이 짓고 살던 집으로서 통나무를 우물정자() 형태로 쌓고 통나무와 통나무 사이의 틈에는 진흙으로 막아 벽체를 이룬 집을 말합니다다. 

3.고상주거: 집의 바닥이 높게 만들어진 누각이나 원두막과 같은 주거를 말합니다. 고상주거의 존재는 고구려의 마선구 제1호 고분벽화나 신라시대 가형 토기에서 높직한 바닥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고상주거의 존재를 인정하나 일부 학자들은 고상주거를 일상 생활주거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철기 시대( 기원전 300년경 ~ 서기 300년경 )는 주철을 주로 사용하여 도구나 무기와 같은 철기를 만들던 시대를 말합니다. 한반도는 대부분이 무역으로 철기가 전래되었으며, 자연적으로 한반도인들이 철기의 제작을 습득한 것으로 보입니다. 철은 쇠의 단단함을 바탕으로 청동기를 몰아내고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금속이 되었습니다.

가옥은 움집에다가 난방을 위하여 온돌 장치를 한 것이 나타나고, 목조가옥도 등장하였습니다. 중부 지역은 평면 장방형 및 육각형이나 튀어나온 출입시설이 붙어 철(凸)자 또는 여(呂)자처럼 생긴 것이 특징이며 중서부 · 서남부 지역은 출입시설이 없는 원형 또는 방형 · 장방형이 특징입니다. 분묘의 축조도 달라져서 넓은 토광에 시체를 묻는 널무덤과 두 개 또는 세 개의 항아리를 맞붙여서 관으로 사용하는 독무덤을 사용했습니다.

농업도 발달하여, 철리(鐵犁)·철겸(鐵鎌) 등의 농구가 발견되었습니다. 한반도인들은 철기를 이용한 경제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농구(農具) 이외에 철검(鐵劍)·철모(鐵鉾) 및 세형(細形)의 동검(銅劍)·구리창·동과(銅戈) 등의 무기와 철비·동탁 등의 마구, 차형(車衡) 등의 차구(車具)가 발견되는데, 이러한 금속제품은 지배층인 족장들이 소유하였습니다. 뒷면에 특수한 기하학적 세선(細線) 무늬가 있고 잔줄 거울과 동물 모양의 대구(帶狗, 帶鉤) 등이 있었습니다.